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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구조조정하는 소설 컨설턴트


책제목 : 컨설턴트
저자/출판사/출판일 : 임성순 / 은행나무 / 2010년
저자/출판사/출판일 : 임성순 / 은행나무 / 2010년
출판사 서평
본격문학과 장르문학의 절묘한 접합
한국 문학의 스펙트럼을 넓히다!

1억 원 고료 2010 제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저자는 죽음을 컨설팅하는 이 책의 주인공처럼 세상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자신 외에 다른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인간이었기에 스스로를 경멸하게 된 후, 간신히 세상 밖으로 눈을 돌릴수 있었다. 그렇게 세상을 보게 된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아직 세상밖으로 눈을 돌리지 못한 이들에게 들려주고자 했다.

죽음을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하여 컨설팅하는 주인공은 자신이 하는 일을 '구조조정'이라고 부른다. 구조조정이라는 단어는 불합리한 구조를 개편하여 보다 좋은 구조를 만든다는 뜻을 가지지만 실상, 구조조정이라는 단어는 늘 우리의 생존본능을 자극하곤 한다. 이러한 구조조정이라는 소재를 죽음에 비유하여, 자신으로 말미암아 누군가를 배제하고 책임을 전가하거나 회피하며 이를 합리화하는 인간의 위선을 거리낌 없이 표출해낸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죽음을 통해 대가를 얻는 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유지하는 것으로 침묵한다. 이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자신의 죄가 아니고 어떠한 처벌도, 책임질 일도 없기 때문에 그저 죽음의 대가를 향유할 뿐인 이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함과 동시에 인간의 이기심을 비판한다. 

현대사회의 암살단, 즉 주인공이 소속된 회사는 살인의 절차를 분업화하여 의사결정권을 모두에게 나누었고 관료제와 복잡한 자본, 다층적인 신분과 구조로 위장하여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시작되었다. 살인은 계속되지만 이제 그 누구도 암살단에게 죄를 묻지 못한다.

모두 공범이었고, 모두 교사범이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사건에 대해 개인에게 책임을 묻고, 누군가를 비난할 수 있다. 하지만 암살단 자체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구성원들조차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존재만으로 생기는 죄. 이러한 의미에서 작가는 사회구조를비판하고 원죄의 의미를 시사한다.

줄거리는 아래를 참고해 주세요

< 줄거리 >
나는 킬러다. 하지만 내가 벌이는 살인은 오직 키보드 앞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나는 구조조정을 한다. 구조조정이란 구조는 변치 않고 그 구성원만이 사라지는 일이다. 나는 매우 평범하다. 화이트칼라들과 다를 바 없다.

살인 방식은 간단하다. 회사의 의뢰를 받아 고객에게 우연처럼 보이는 불행의 연쇄를 계획한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작은 불행들이 누적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죽음에 이른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타살처럼 보이지 않기에 누구도 불행해지는 사람 따위는 없다. 이 때문에 나는 죽음을 제공하는 것도 일종의 서비스업이며, 이 일은 컨설팅을 하는 전문직이라고 생각한다.
딱 한 가지 두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회사이다. 회사는 언제나 선택을 조종한다. 실제로 나에겐 어떤 선택의 여지도 없으며, 그러므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 역시 없다. 고객들 역시 과거를 캐보면 또 다른 누군가의 가해자였다. 물론 고객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인지하지 못하겠지만, 따라서 나도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다.
컨설턴트
이 모든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평범한 삶을 살길 원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청혼을 할 예정이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는 옛 애인의 구조조정을 의뢰한다. 정확히 알 수 없는, 조금은 불편한 감정이 들지만 어렵지 않게 옛 애인의 죽음을 설계했고 그 계획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완벽했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으로 나는 경찰서의 조사를 받게 된다. 그녀의 죽음은 내 계획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회사의 음모라고 생각한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회사에 대해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모든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의심이 깊어간다.
괴로워하던 나는 도망치듯 콩고로 떠난다.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콩고를 가로지르며, 나는 회사의 정체를 서서히 깨닫는다. 동시에 자신을 지구 반대편까지 끌고 왔던, 나를 두려움에 빠뜨렸던 보이지 않는 것의 실체와 마주한다.

책에 대한 서평으로 돌아오면
스스로 선의를 갖고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의 모순점을 보았다. 선의를 갖고 있다는 확신이 때로는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하여,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었다. 결국, 모든 이들에게 인생이란, 선악의 중간에 위치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어느 순간에 악이 모습을 보여도 절망할 필요도 없고, 선이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 선과 악이 우리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수용하여, 비심판적 태도로 타인의 자기 결정을 존중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 결정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가 되고자 한다.

죽음을 컨설팅한다는 이 책의 소재만을 보았을 때, 언뜻 깊이 있는 내용의 소설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인물들의 갈등과 딜레마는 치열한 우리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며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책을 덮고 남아있는 강력한 여운은 내게 사회를 살펴보며 돌아보라 말하고 있다.

우리의 일생은 사람과 함께 시작된다. 사람에 의해 생명을 얻으며, 사람에 의해 길러지고, 사람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간다. 만약 타인과의 접촉 없이 혼자 살아왔다면, 사랑이나 미움이라는 단어를 모르고 지낼 것이다. 배고픔, 두려움, 피로함 등과 같이 원초적인 감정은 가질 수 있지만, 인간만이 가진 정서와는 동떨어진 채 살아야 한다. 그렇기에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이나 감정을 가짐으로써, 비로소 우리가 인간다운존재임을 알게 된다.

이책을 통해서 우리가 평소에 옳다고 생각한 일들이 정말로 옳은 것인지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는 구조조정의 세태와 사회구조 속에서 책임을 다른이에게 전가하며 묵인하는 이들에게 당신은 바르게 살고 있는가? 라고 묻는다. 나는 그저 갈등의 틈새에서 자라며 사는 것이 진정으로 사람다운 삶이라고 생각된다. 설령 갈등의 틈새에서 죄를 지어도 말이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던 무의식적인 행동들 때문에, 누군가는 죽음을 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과연 우리가 죄를 짓지 않고 살고 있는 것인지를 묻는다. 이에 대해 나는 선의에 의해 행한 일이라도 반드시 옳은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일었다. 사람은 매 순간 옳은 일만을 할 수 없으며, 결국 선의라는 것은 자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아갈 뿐이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평가가 이해보다 오해에 기반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본모습을 어떻게 남이 알 수 있겠는가. 오해하는 것으로부터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시작되기에 상대방과 더 깊은 관계를 맺고 기대를 갖게되는 것이다.

진정한 구조는 결코 조정되지 않는다.
사라지는 건 늘 그 구조의 구성원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