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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전쟁 임진왜란의 기록인 류성용의 징비록


책제목 : 징비록
저자/출판사/출판일 : 류성용 / 서해문집 / 2003년


징비록의 작가는 조선 중기 문신 서애 류성룡으로서 선조 32년, 관직에서 물러나 안동으로 낙향해 있을 때 집필한 책이다. 제목인 '징비'는 중국의 고전인 「시경」 소비편에 나오는 문장인 "여기징 이비후환), 즉 "나는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조심한다."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류성룡은 스스로 쓴 서문에서 전란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반성에서 「징비록」이 책을 저술했다.
책제목 : 징비록 저자/출판사/출판일 : 류성용 / 서해문집 / 2003년
징비록의 전반부에서는 류성룡 스스로 쓴 서문에서 전란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반성에서 「징비록」을 저술했음을 서술하고 있고, 임진왜란 당시 류성룡은 좌의정과 병조판서에 이어, 영의정 등 최고의 직책을 맡으며 전쟁의 상황을 총괄하는 직책을 맡은 책임자가 쓴 기록에 대한이야기가 쓰여져 있다.

징비록의 중반부에서는 전황에 대한 경과뿐만 아니라 전란 발생의 원인과 조정의 대응에서 드러난 문제점 등을 기록하고 있다. 전쟁의 구체적인 전개 상황에서 비롯하여 명나라 군대의 참전 과정과 강화회담의 뒷이야기, 백성들의 참상 등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이순신, 신립, 원균, 곽재우 등 주요 인물들의 공적과 인물평까지 포함하고 있다. 미시적이면서 거시적인 관점에서 임진왜란의 상황을 세밀히 기록하고 있으며, 책의 후반부에서는 이순신의 활약상이 다수 기록되어 있고, 여진족의 침입 격퇴에도 큰 공을 세운 내용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그의 영웅적인 모습을 보인 이순신을 중언하고 있다. 그리고 전쟁은 군사적 발전에 기여해야 하고 평시의 군사대비태세를 갖추어야 만이 전쟁을 예방할 수가 있으며, 유사시 승리할 수 있다는 교훈을 말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전쟁 기록서란 인간 행위의 잘잘못을 속속들이 아우르는 총체적인 모습을 재구성하여 기술한 기록서가 진정한 역사서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것을 기술한 저자는 역사의 선각자이다. 이러한 선각자 중 임진왜란의 어려움 속에서도 잘못됨을 덮으려는 이들을 물리치고 '징비록'을 기록한 서애 류성룡이 진정한 역사의 선각자가 아닌가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군대는 백년에 한 번 있을 지도 모르는 전쟁에 대비하여 평시 평화를 유지하고 있으며, 전시를 대비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우리에게 '징비록'은 현재 안보환경을 정확히 인식하고 전쟁이나 각종 도발에 철저히 대비해야 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이러한 한마음으로 뭉친다면 군사적인 위협뿐만 아니라 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세계화 속에 우리 민족이 살아남게 됨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되기 때문이다.

둘째, 조선의 500년 역사 속에서 그동안의 군의 역할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았을 때, 슬프지만 군의 역할이 매우 미미했고 군사적 발전 측면에서도 우리의 군사적 발전은 되지 않았다. 임진왜란 28년 후 정묘호란이, 37년 후 병자호란이 일어나지만, 조선은 임진왜란과 똑같은 상태로 이순신, 권율과 같은 명장의 부재와 임금의 주변에 류성룡 같은 충신이 없어서 임금은 삼배구고두의 치욕을 당했던 역사를 잊고 있기 때문에 자각이 필요로 하다.

세번째로 전쟁을 준비하지 않은 자는 반드시 전쟁에서 실패한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이미 여러 번 입증 되었다. 제나라의 명장 사마양저가 '천하가 평화롭다고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태롭다'라는 표현이 많이 알려져 있다.

반만년의 우리 민족사를 뒤돌아볼 때 평화 분위기에 젖어 전쟁에 대비하지 않고 국방을 소홀히 했을 때 예외 없이 주변 세력의 '침략을 받아 국난을 자초하고 시련을 당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위국헌신의 상무정신으로 굳게 뭉쳐 어떠한 외침도 물리치고 국난을 국복했으며 우수한 민족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책에서 보이는 저자의 주관적인 서술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

태평한데 익숙해서 군사는 있기는 했지만 제대로 조련 받지 못했소,
갑자기 사변을 당해 고삐 플린 말처럼 흩어졌으니,
훈련을 시키지 않으면 양으로 범을 치는 것이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