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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학과와 소방 구조대원의 수고로움과 희생에 대한 책 : 만약은 없다


책제목 : 만약은 없다
저자 / 출판사 / 출판일 : 남궁인 / 문학동네 / 2016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생지옥 같은 응급실. 그곳에서 6년 넘게 몸 바쳐 온 남궁인 의사는 그 틈바구니 속에서도 어떻게든 남기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다시는 잊지 않기 위해서, 혹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그것들은 정말 슬프고 비통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들일 수도 있고,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옹급의학과와 소방 구조대원들의 수고로움, 혹은 자신의 하루를 되돌아보는 일기일 것이다. 그렇게 활자로 승화된 삶과 죽음이 맞닿는 경계선은 독자들에게 인생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공하기 위해 이 책을 저술했다.
책제목 : 만약은 없다 저자 / 출판사 / 출판일 : 남궁인 / 문학동네 / 2016년
만약은 없다에서 저자는 응급실에서 겪은 일들을 기반으로 작성한 여러 에세이들로 이루어져있다. 때문에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를 꼽기는 힘들지만, 다 읽고 나면 이 38편의 기록 전부가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자체라고 느껴진다. 왜냐하면 이 글들은 대부분 보통의 삶을 사는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 비참하고 비극적인 현실은 그들의 일상에서 그렇게 와 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며, 불행은 어느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우연의 산물이라는 사실. 그 지극히 슬픈 사실을 부정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발버둥이 저자가 응급실에서 지금껏 보고 느낀 모든 것이기에 그 진실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은 내게 부끄러움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남궁인 의사가 서술하는 공간 속에는 절규와 비명이 난무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물흐물하게 녹아버린 새까만 늪이 가득 차있다. 몇 번의 우연이 겹치고, 몇 번의 필연이 교차하여 예고 없이 다가오는 그 죽음들. 사랑하는 이를 눈앞에서 잃어버리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 비극 속에서 제 한 몸 불사르며 어떻게든 정해진 결말을 바꿔보려 발악하는 의사 한명. 나는 그의 숭고한 회생을 목격하였고, 자기반성을 거듭하여 부끄럽고 초라해진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알게 되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슬픔이 정말 많이 존재하고, 그리고 그 슬픔을 덜어주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그렇기에 나는 일단 나에게 다가오는 슬픔이라도 기껍게 받아들이자는 다짐을 했다. 옆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돕고, 닥친 일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가끔씩은 나도 저자를 본받아 작은 회생 정도는 해보자고, 그렇게 부끄러워진 나를 마주하고, 더 떳떳한 나를 그려볼 것이다.

나는 '만약은 없다'라는 작품이 내 가치관을 뒤혼들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까지 나름 성공적이고,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궁인 의사가 써내려간 이 기록들을 읽고 나니, 누가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나는 지금까지의 내가 몹시 부끄럽고 또 부끄러 이 책은 가치관을 바꿀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책에서 저자는 희생을 보여주었다. 희생은 오로지 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기브 앤 테이크' 정신으로 살아오던 나에게는 그 불행의 구렁팅이에 기꺼이 한 몸 던지는 의료진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책을의다 보니 그들이 어떤 심정으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어떤 생각으로 그런 인생을 살아가는지 깨닫게 되었고, 그 숭고한 희생정신은 내 계산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삶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

둘째, 책은 현실을 보여주었다. 삶의 현실과 죽음의 현실. 삶은 마냥 찬란하지 않고, 죽음은 우리가 쉽게 지껄일만한 게 못 된다. 온갖 불행을 긁어모은 것 같은 환자들의 삶과 부지불식간에 찾아온 죽음에 대한 슬픔,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이별에 대해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하는 남겨진 자들. 그런 현실과 슬픔이 우리의 도처에 깔려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실이 나의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자각은 나의 무지와, 무관심과, 무감각함을 아프게 꼬집어 내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의 나 자신을 보여주었다. 나는 책 속의 사람들이 그렇게 바라고 또 바라던 하루를 당연시 여겼고, 감사할 줄 몰랐다. 사소한 것에 화를 내고, 불평하고, 투덜거렸다. 내가 이렇게 온전히 숨글 쉬고 심장이 뛴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감사해야 했음을, 기뻐해야 있음을 알지 못 했다. 그렇게 나는 책을 읽으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나의 나태와 오만 따위의 온갖 죄악을 발견했다. 나는 부끄러울 수밖에없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 책을 몇 번이고 다시 읽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고난과 역경이 찾아오면, 이들의 더한 힘겨움과 어려움을 상기하며 그것들을 이겨낼 용기를 얻을 것이고, 행복과 성공이 찾아오면 이들의 희망과 기대를 떠올리며 그것들에 더욱 감사할 것이다. 무엇보다 남궁인 의사의 기록은 나의 부끄러움을 되새기게 하는 거울이 되어 매번 내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비춰줄 것이라 생각한다.
책제목 : 만약은 없다 저자 / 출판사 / 출판일 : 남궁인 / 문학동네 / 2016년
다만 아쉬운 것은 이 이야기들 속에서 작은 희망도 발견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러한 현실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기에 책의 제목도 '만약은 없다' 이겠지만, 나로서는 일말의 여지가 있는 이야기가 조금은 들어가도 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 아니 안타까움이 남는다.

나에게서 모든 게 빠져나가 빈껍메기만 남을지라도 해야 한다.
인간에게 고통이 있고 그것이 조금이라도 덜어지는 일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