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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 작가 김애란이 선보이는 일곱 편의 마스터피스


책제목 : 바깥은 여름
저자 / 출판사 / 출판일 : 김애란/ 문학동네 / 2017년


작가는 책 말미에 '하지 못한 말과 할 수 없는 말, 해선 안 될 말과 해야 할 말은 어느 날 인물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라는 문장을 남겼다. 이러한 작가의 말처럼 '바깥은 여름'에서는 언뜻 보면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편소설들을 '말'이라는 핵심 주제로 한데 묶었다. 요즘 사람들은 말로 남을 상처 입히기를 서슴지 않는다. 나의 장점을 위해 상대방의 단점을 부각시키는 것은 당연하고, 심지어 다른 사람의 슬픔을 이용하기도 한다. '바깥은 여름'에는 이런 말들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의이야기가 담겨있다.
책제목 : 바깥은 여름 저자 / 출판사 / 출판일 : 김애란/ 문학동네 / 2017년
작가는 첫 번째 소설인 '입동'에서 아이를 잃은 후 생겨난 끔찍한 소문들로 인해 상처받는 부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또 '건너편'에서 이수가 접한 귀에 쉽게 들어오는 소문들, '풍경의 쓸모' 속 누군가를 맹렬히 헐뜯고 깎아내리는 학생들과 어머니, '가리는 손' 속 뉴스 페이지의 악플 등 말로 상처 주는 사람들과 상처받는 사람들을 소설에 여러 번 등장시키면서 말이 무기가 되었을 때 얼마나 위험하고 비도덕적인지를 보여준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타인에 대한 소문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직접 그 소문을 유포하기도 한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무심코 뱉어낸 말로 시작된 소문이 얼마나 무서운 힘을 가지는지를 깨달았다. 그래서 타인에 대한 소문이 들려오더라도 직접 듣고 확인한 사실이 아니면, 한 번 더 의심해보는 습관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만약 그 소문이 사실이더라도 나 자신 때문에 그 소문이 더 부풀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소문을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일도 이제 더는 하지 않기로 했다.

책을 읽기 전 '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왜 바깥은 여름인데 안쪽의 계절은 아직도 겨울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끝마친 후 그 의문은 '왜 우리는 서로의 계절에 겨울이 오게 했을까'라는 반성으로 바뀌었다. 온도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안쪽에 비해 바깔쪽이 차갑다면, 안쪽은 여름이 되고, 반대로 바깥쪽이 뜨겁다면 안쪽은 겨울이 된다. 바깥쪽의 달궈진 소문들과 뜨거운 시선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은 차가운 얼음벽을 세워 그들 스스로를 겨울 속에 가두었다. 우리는 이제 그 얼음벽을 허물어야 한다.

첫 번째로, 우리의 부정적인 소문은 그것의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실제로 당사자를 그렇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낙인효과'라는 말이 있다. 범죄자나 비행 청소년 같은 이들이 한 번 사회 속에서 부정적인 존재로 낙인찍히게 되면 그들 스스로도 자신을 그런 존재로 생각해서 다시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는 기회나 의지가 생겨도 곧 이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 낙인효과다. 우리의 비난과 부징적인 소문에 노출된 당사자 코끼리가 어른이 되어도 어렸을 때 묶여있던 말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자신 스스로의 한계를 규징짓고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로, 누구에게나 능력이 부족했던 시절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일에 능숙하지 못하다고 부정적인 소문을 내거나 그를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과거의 본인 스스로를 욕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서로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을 내고 서로를 헐뜯는다면 상대에게 우리의 마음을 믿고 맡길 수는 없을 것이다. 신뢰와 우정은 인과관계에서 중요한데, 우리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만 듣고 그들을 판단하기보다는 우리가 보고 느끼는 그대로 그들을 대해야 한다. 말은 엄청난 힘을 가진다. 듣는 사람뿐만 아니라 내뱉는 사람의 운명마저도 손쉽게 뒤바꿀 수 있는 것이 우리가 가진 언어의 힘이다. 우리는 대화에서 시작된 갈등으로 같은 민족에게 총칼을 겨누기도 했고, 몇십 년의 시간을 지나 대화로써 다시 손을 맞잡기도 했다. 우리가 말의 힘을 조금이라도 깨닫는다면, 지금 당장 내 주변사람들에게 어떤 말을해야 하는지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이다.
바깥은 여름:김애란 소설,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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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인물이 사람이 되는 데 필요한 말'에 대해 고민했다고 말했다. 책 속에 직접적으로 그 해답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나는 왠지 그 답을 알 것 같다. 인물은 평면적이지만 사람은 입체적이다. '바같은 여름' 속 인물들은 '착하다, 나쁘다'라는 말로 정의되지 않는다. 서로가 자기 자신이면서 동시에 타인의 모습으로 등장해, 누군가에게 말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동시에 상처받기도 한다. 어쩌면 인물이 사람이 되는 데 필요한 것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인물의 평면적 모습이 연속되어 입체적으로 보이게 되는 것, 즉 우리가 그들을 한마디 말로 정의하지 못하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인물이 사람이 되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작가가 인물과 사람이라는 개념을 통해 타인의 전체가 아닌 단면만을 보고 판단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비판하려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소설에 대해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점은 소설 간의 유기성에 있다. 

'바깥은 여름' 속 총 일곱 편의 소설들이 모두 말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중에서 '침묵의 미래'라는 소설은 다른 소설과의 유기성이 조금 떨어졌다. 다른 소설들이 인물들의 말을 통해 소설을 이끌어갔다면, 이 소설은 언어가 주인공 그 자체가 되는, 언어의소멸에 대해 다룬 소설이었다. 물론 '침묵의 미래' 또한 훌륭한 소설이지만, 다른 여섯 편의 소설들과는 결이 달라서 왜 이 소설이 '바깥은 여름'에 수록되었는지 의문점이 들었다. 그 점만 제외한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물이 사람이 되는 데 필요한 말은 무얼까 고민하다 말보다것을 요구하는 시간과 마주한 뒤 멈춰 서는 때가 잦다